BBC News Mundo
2023년 3월 24일
최근 아르헨티나는 100%가 넘는 연간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지만 높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사는 것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비록 현 100% 이상의 역사적인 물가 상승률을 겪고 있지만 중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가진 아르헨티나가 세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초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30년 전에는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심각한 금융위기와 높은 빈곤 수준 속에서 소비자 물가 지수(CPI)는 1989년 3,079%를 기록했고, 이듬해에 2,314%를 기록했다.
그러나 불과 5년 후, Carlos Menem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동안 CPI는 0%로 떨어졌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초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현재의 인플레 위기에도 동일한 솔루션을 적용할 수 있을까?
태환법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에 영향을 미치던 인플레이션 악순환은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당시 Monem 정부의 경제부 장관 Domingo Cavallo는 유명한 태환법을 포함하여 국가 경제조직의 중대한 전환을 수행했다.
1991년 4월 의회 승인을 거쳐 정식적으로 발효된 이 조치는 미국 달러에 대한 아르헨티나 페소의 고정 패리티를 설정했다. 즉, 아르헨티나 페소의 가치를 1달러에 고정시킨 것이다.
이 시기에는 보통 '일대일 태환'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가상의 '통화위원회' 역할을 수행하며 시중에 유통되는 각 1페소를 미화 1달러로 환전 해줄 의무를 졌다.
이렇게 아르헨티나는 단기간에 인플레이션을 크게 낮추고 경제를 안정시켰고, 그 결과 꾀 오랜 기간 동안 물가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 어떻게 아르헨티나의 '고정환율제'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이유
2023.06.03 - [라틴아메리카 경제] - [아르헨티나 경제] 1991년 아르헨티나 고정환율제 정책이 어떻게 인플레이션 감소에 효과가 있었나?
[아르헨티나 경제] 1991년 아르헨티나 고정환율제 정책이 어떻게 인플레이션 감소에 효과가 있었
지난 1980년대 다른 중남미 국가와 유사하게 아르헨티나도 극심한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소비자 물가 지수(CPI)는 1989년 3,079%를 기록했고, 이듬해에 2,314%를 기록했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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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onvertibilidad contribuyó a que el país estabilizara su déficit -aunque no totalmente-, recibiera inversiones y aumentara su productividad"
고정환율제는 국가가 적자를(전체는 아니지만) 안정시키고 투자를 받아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아르헨티나의 경제학자 Eduardo Levy-Yeyati는 이 경제정책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멕시코,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이 미국 상업 은행과 계약한 부채를 재구성한 Brady 계획으로부터 직접적인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Brady plan : 1989년대 미국 재무장관 Nicholas Brady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으로 1980년대 중남미를 포함한 다수 개발도상국의 부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발표한 채무구제 계획이다. 부채위기로 파산하거나, 디폴트 위기에 직면한 중남미 국가들에게 상업 은행 채권(대출)을 미 재무부가 발행한 '브래디 채권(Brady Bond)'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상업은행들이 무위험 거래 상품에 대한 대가로 평균 35%의 상각률에 달하는 부채 탕감을 약속하여 경제체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던 중남미 부채위기를 종식시켰다.
또한 Cavallo 장관이 주도한 무역 개방, 공기업 민영화, 달러의 글로벌 순환과 같은 다른 개혁들의 혜택 역시 받았다.
1980년대 부채위기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가장 충격적인 경제 에피소드' 중에 하나로 평가되고 빈곤의 상당한 증가를 포함한 여러 강력한 사회적 영향을 끼쳤는데, 우리는 1990년대 초반 당시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80년대 부채위기 이후 경제 안정화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이자 컨설팅 회사 Eco Go의 이사 Mariana Dal Poggetto는 아르헨티나가 그 당시의 혼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환율 고정을 통해 달러를 '고정 닻'으로 사용한 유일한 중남미 국가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향후 고정환율제는 결국 실패하고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붕괴를 야기한 주된 원인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아르헨티나 고정환율 정책은 왜 실패했나?
"Pasamos de una economía cerrada, con alta inflación y muy protegida, a una economía abierta, con muy baja inflación pero que entró en problemas a partir de 1996"
우리는 인플레이션과 보호주의가 높은 폐쇄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은 개방경제로 전환했지만 1996년부터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조금씩 첫 균열들을 보인 고정환율 정책은 어떻게 되었을까?
"La fortaleza del dólar, generada por un aumento de la tasa de interés en Estados Unidos, terminó provocando crisis en países emergentes como Argentina"
미국의 금리 인상에 의한 달러 강세는 결국 아르헨티나와 같은 신흥국에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고정환율제의 붕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달러 강세를 포함한 '외부 충격'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동시에,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아시아 위기와 러시아 루블화의 급격한 평가 절하도 중남미 국가의 경제 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타격은 1999년 브라질로부터 왔다. 브라질은 자본 도피와 경제활동 침체에 따른 강력한 위기 때문에 헤알화를 평가절하 하기로 결정했다.
헤알화 평가절하에 맞춰 아르헨티나도 같은 해에 페소를 평가절하 했어야 했지만 경직된 체제 때문에 그러지 못했고 결국 아르헨티나의 대 브라질 수출 감소를 야기하여 자동차, 섬유, 유제품 및 신발 산업과 같은 다양한 국내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La devaluación del real en 1999 fue el acta de defunción de la convertibilidad"
1999년 헤알화의 평가절하는 아르헨티나 고정환율 정책의 사망선고였다.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1999년~2001년 사이의 2년 동안 금융 위기는 점점 더 심화되었고 결국 기록적인 실업률(근로자 10명 중 3명 실직)이 증가와 강력한 경기 침체를 견뎌야 했다.
작은 사육장, 'El Corralito'
2001년 달러에 대한 전 세계적인 수요는 아르헨티나가 감당 가능한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경기 침체와 값비싸고 경쟁력 없는 페소화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대외 부채의 97%가 달러일 정도로 점점 더 외국 자금 조달에 의존하게 되었다.
숨막히는 경제상황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경제체제 건전성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를 해외로(특히 이웃나라 우루과이로) 송금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달러 유출로 중앙은행의 지급 준비금이 떨어지자 Fernando De la Rúa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하고 부채 구조조정을 협상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자본 도피와 경제 붕괴 앞에 몇 달 후 IMF는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훨씬 더 큰 뱅크런이 발생했다.
그러자 De la Rúa는 '태환법의 아버지'인 Domingo Cavallo 전 경제부장관이 고안한 법령 제1570호에 서명하여 달러 유출 차단을 시도했다.
꼬랄리또(Corralito)라고 불리우는 이 조치는 곧 은행 예금 인출에 대한 제한을 부과하여 국민들을 더욱 질식시키고 무역을 마비시켰으며, 경제의 방대한 비공식 부분을 말살시켰다.
점차 증가하는 폭력시위와 약탈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느낀 De la Rúa 대통령은 결국 헬기를 타고 도망가며 사임했고 유례없는 정치적, 제도적 위기가 닥쳤다.
이듬해 2002년 초 달러와 페소 간의 고정환율제와 달러 예금의 '페소화'는 결국 막을 내렸고 이로 인해 한 순간에 심각한 페소화 평가절하가 발생하여 아르헨티나 국민의 약 7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동시에 정부는 국가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인 1,440억 달러(약 180조원) 규모의 디폴트를 선언했다.
오늘날 유사한 정책을 적용할 수 있을까?
과거 2002년에 발생한 고정환율제 정책의 갑작스러운 종료는 아르헨티나가 겪고 있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현 경제학자이자 미래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되기를 열망하는 자유주의 우파의 대표 Javier Milei 이다.
Milei는 환율 패리티가 거시경제 변수를 통제하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로세스 중에 하나이므로 이와 유사한 모델을 구현하는 것이 현재 경제 과정을 변화시키는 데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a convertibilidad se lanzó el 1 de abril de 1991, en enero de 1993 éramos el país con menos inflación del mundo. Yo propongo la libre competencia de monedas, reforma del sistema financiero.
고정환율제는 1991년 4월 1일에 시작했고 1993년 1월에 우리는 세계에서 인플레이션이 가장 낮은 나라였습니다. 나는 통화의 자유경쟁과 금융 시스템의 개혁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여러 경제학자들은 이 옵션이 그다지 실행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 않다.
"Un régimen cambiario no te resuelve el problema. Si no tienes una corrección de las cuentas fiscales y un ordenamiento de los precios relativos, no vas a parar la inflación. Entonces necesitas un programa de estabilización"
어떠한 환율 체계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재정 계정을 수정하지 않고 상대 가격을 정렬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을 멈출 수 없습니다. 안정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최적의 환율통화 체계는 무엇인가?'의 질문에 Marina Dal Poggetto는 '고정환율제'도 '통화위원회제도'도 아니라고 답했다.
"La convertibilidad terminó mal porque el shock fue tan duradero que no sobrevivió"
고정환율제는 경제 쇼크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국가가 생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쁘게 끝났다.
한편 Eduardo Levy-Yeyati는 실질적으로 새로운 태환법은 오직 사전에 국제준비금이 축적된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의 아르헨티나 중앙은행과 상업은행들은 모두 달러로 유동성 자금을 유지했었는데, 오늘날 크레디트스위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정부나 중앙은행이 유동성 준비금을 사전에 비축하지 않는 한 이를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La convertibilidad probó que sirve para estabilizar pero no reemplaza la necesidad de equilibrio fiscal y políticas de desarrollo.
Pensarla hoy como un atajo a la estabilidad me parece ingenuo."
고정환율제가 안정화에 기여한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그것 만으로 재정 균형 및 개발 정책의 필요성을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그것을 안정성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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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라탐 : 스페인어 공부 & 라틴아메리카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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